저에게는 꽤 중요하면서도 힘든 봄이었습니다. 목표로 삼고 노력하던 일이 이뤄지지 않아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허무함에 빠졌습니다. 삶의 방향도 바꿔볼까 고민했었구요. 그러던 중 절친한 친구로부터 '장애인 활동보조인'이라는 것을 권유받았습니다. 친구는 직장생활에 바쁜 와중이라 쉽지 않았을 터인데도 몇 군데의 사회봉사를 하고 있었고, 올 5월부터 보건복지부에서 '자원봉사'에 의존하고 있던 장애인 활동보조를 제도로 만들어 시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게 일러주었습니다. 의기소침한 기분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제게 활동보조인은 꽤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보람에다 보수까지 있다니요.
하지만 별다른 고민 없이 시작한 일인지라 처음엔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1급 장애인 댁으로 직접 가서 세면과 식사, 용변 등을 도와드리고 외출준비를 하고 전동휠체어에 태워드리는 일입니다. 씻고 먹고 옷 입는, 어찌 보면 매일 하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자기 몸이 아닌 다른 사람의 대소사를 취향과 요구에 어긋나지 않게 해주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처음 며칠은 의욕만 앞서 이것 저것 일을 저지르고선 이용자 분에게 타박을 맞기도 하였습니다. 사전 교육 시간에 배우듯이 활동보조라는 것이 이용자의 생각을 먼저 듣고 그 바램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임에도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일어난 일이었지요.
제가 활동보조를 하고 있는 박성현씨는 1급 지체 장애인이고 다리는 물론이고 양손도 움직임이 그다지 자유롭지 않습니다. 혼자서는 일어나 앉을 수도 없구요. 집에서는 무릅 꿇은 자세로 있기에 엉덩이나 무릅에 무리가 많이 가십니다. 몇 년 전에 디스크 수술을 받으셔서 요즘에 더욱 불편하시다 합니다. 처음엔 약간 측은한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청소를 하다 우연히 활동보조인들을 위한 체크리스트 같은 작은 책자를 발견했습니다. 그 수첩은 장애인이용자가 직접 자신의 상태에 따라 할 수 있는 일들과 없는 일들을, 또 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에 대해 간략히 적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따르면 박성현 씨는 할 수 있는 일들이 꽤나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의 '보조'만 해주면 대부분의 일들을 본인의 의지에 따라 생활하실 수 있으십니다. 저 같은 일반인보다 오히려 더 바쁜 일상을 살고 계시구요. 여기 관악 장애인 자립 센터에서 자립생활 팀장도 맡고 계시지요. 저번에는 감기 걸려 고생하는 와중에 과천정부종합청사에서 일인시위를 참여하고 오시고, 활동보조인 모집 광고 전단을 돌리기도 하더군요. 아무래도 불편한 몸으로 매일 외출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제 사는 모습에 대해 반성하게 됩니다.
활동보조인은 이용자의 충실한 수족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보조하는 입장에서 이용자의 주체성을 살려주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신은 점점 수동적인 존재가 되고 단순노동을 하는듯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 간에 많은 대화를 해야 하고 배려해가며 협력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실에 급훈으로 흔히 붙어있던 '지덕체'가 떠오르는데요. 단순히 육체적으로 힘만 써주는 것이 아니라 활동보조인의 지식, 경험이 장애인분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함께 어우러져야 하겠지요. 물론 말이나 생각과는 달리 잘 안되는 점도 많고, 미숙한 점도 많아서 박성현 씨 두달동안 꽤나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성현씨 어머님을 몇 번 뵈었는데,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우리 성현이 봉사해주던 사람들 다들 잘 됐다”고. 하지만 단순히 ‘좋은 일’을 한 덕에 복 받아서 그분들이 하시는 일들이 잘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활동보조를 하면서 얻은 경험이 다른 곳에선 얻을 수 없는 값진 것이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열심히 살면 좋은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겠지요.
저는 사정상 이달까지 길지 않은 활동을 마치게 될 것 같습니다. 성현씨가 계속 열심히 삶의 불편을 이겨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 다음에 활동보조를 하실 모든 분들, 어머님 말씀처럼 모두 잘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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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문 티난다..^^;;
오랜만에 숙제..에 가까운걸 해볼라니 힘들었다.
뭐 나름 나쁘지 않게 써진것 같아서 올린다..ㅡㅡ;;
쓰면서도 좀 간지럽긴 했다..ㅡㅡ;;